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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어의 정원(The Garden of Words, 2013) 리뷰 - 빗속에서 피어난 조용한 사랑 줄거리언어의 정원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의 2013년 작품입니다. 영화는 비 오는 날의 신주쿠 공원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타카오와 성인 여성 유키노가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타카오는 구두 장인이 되고 싶어 아침 수업을 자주 빼먹고 공원에서 구두 디자인을 그리는 소년입니다. 그러던 중, 비 오는 아침에 공원 정자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의문의 여성 유키노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약속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비 오는 날이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묘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채 이어지는 이 만남은 타카오에게는 성장의 계기가 되고, 유키노에게는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관계는 점점 깊어지지만, 각자의 현실 속에서 .. 2025. 6. 5.
영화 룸(Room, 2015) 리뷰 - 세상 밖으로 나오는 용기 줄거리영화 룸(Room)은 평범해 보이지만 굉장히 충격적인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이(조)'라는 젊은 여성과 그녀의 다섯 살짜리 아들 '잭'입니다. 영화는 그들이 사는 단 하나의 공간, 즉 '룸'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상으로 시작됩니다. 알고 보면 조이는 7년 전 납치되어 이 방에 감금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 납치범인 '올드 닉'에게서 아들 잭을 낳았습니다. 조이는 자신이 겪는 비극 속에서도 아들에게 세상의 존재를 숨긴 채, 이 작은 방을 전부인 것처럼 꾸미며 아들을 키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조이는 더 이상 이 현실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잭과 함께 탈출을 계획하게 됩니다. 영화는 탈출 후에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 2025. 6. 4.
더 페이버릿 (The Favourite, 2018) – 권력, 질투, 생존이 교차하는 궁정 드라마의 새로운 해석 1. 단순 시대극을 넘어선 권력과 욕망의 드라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8년작 〈더 페이버릿〉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궁중 멜로가 아니다. 이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와 왕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투쟁, 사랑과 질투라는 보편적인 감정의 격돌을 세 여성의 시선을 통해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여왕 앤과 그녀의 절친한 친구 사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하녀 애비게일 사이의 권력 관계는 단순한 삼각관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쟁이며, 감정이라는 무기를 들고 벌이는 심리적 생존 게임에 가깝다. 2. 여성 캐릭터 중심의 복잡한 권력 관계 우선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앤 여왕은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있으나, 신.. 2025. 6. 2.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 고통과 회복의 정직한 초상 1. 감정의 회피가 아닌 직면, 리 처널의 서사〈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잔잔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깊은 상실과 고통을 담아낸 영화다. 감독 케네스 로너건은 관객이 쉽게 감정에 이입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도의 슬픔과 무력감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주인공 리 처널(케이시 애플렉 분)의 삶을 따라가며, 슬픔을 회피하거나 극복하려는 고전적인 서사 대신,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정체성과도 같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삶 전체가 정지된 듯 살아가는 남자를 그는 말수 적고 굳은 표정 속에서 치밀하게 표현한다. 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벌하는 듯한 삶을 택한다. 그의 감정은 폭발하기보다.. 2025. 5. 31.
캐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2012) - 공포 장르를 해체한 메타 호러의 정수 장르의 틀을 깨다: 영화의 첫인상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나는 단순한 슬래셔물이겠거니 생각했다. 오두막, 젊은이들, 숲 속이라는 요소만 봐도 그 결말은 뻔해 보였다. 하지만 《캐빈 인 더 우즈》는 시작부터 그런 기대를 조롱하듯 반전을 선사한다. 우리가 알던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공식들을 뒤틀고 해체하며, 동시에 왜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었는지를 블랙코미디처럼 비꼰다. 단순한 공포물이 아닌, 공포 장르 자체에 대한 메타적인 비평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을 넘어서 장르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전형성을 전제로 한 비틀기이 영화는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숲속 오두막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설정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공포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릴.. 2025. 5. 28.
이터나이트 (Eternité, 2016) - 세 여인의 시간, 세기의 사랑 시간이 흐르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고찰《이터나이트》는 영화가 아닌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베트랑 보넬로 감독의 섬세한 연출 아래에서, 우리는 세 여인의 삶을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듯 따라가게 됩니다. 이 영화는 명확한 사건이나 반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흐름을 천천히, 조용하게 관찰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득하게 앉아 감상한다면, 그 안에서 묘하게 빠져드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세 여인의 세기 유전처럼 흘러가는 사랑과 인생영화는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마틸드, 발렌틴, 그리고 가브리엘라. 이 세 인물은 세대를 거치며 가족과 사랑, 상실, 모성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절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강물처럼 이어집니다. .. 2025.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