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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 2018) 리뷰 – 권력, 질투, 그리고 여성의 게임

by begin1004 2025. 6. 11.

줄거리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궁정 내 여성들 사이의 정치적 줄다리기와 욕망의 대결을 다룬 작품입니다. 실제 인물인 앤 여왕과 그녀를 둘러싼 두 여성, 사라 처칠과 애비게일 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변화와 권력 싸움이 주요 내용입니다. 병약하고 외로움에 젖은 앤 여왕은 친구이자 정치적 조언자인 사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궁정에 새롭게 등장한 애비게일 힐은 자신의 몰락한 신분에서 탈출하고자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서서히 사라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듯 보였던 애비게일은 점차 야망을 드러내며, 여왕의 마음을 얻고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섭니다. 이 세 여성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적정치적 갈등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나 우정이 아니라, 명예와 생존, 지위와 영향력을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 병약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지만, 여왕이라는 지위를 가진 인물입니다.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강하며, 그것이 그녀의 정치적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사라 처칠(레이첼 와이즈): 앤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조언자. 강단 있고 당당하며, 여왕을 조종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애비게일의 등장으로 점차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궁정에 들어와 하녀로 일하다가 야망을 품고 점차 여왕의 총애를 얻게 되는 인물입니다. 순진한 척하면서도 매우 계산적이고 냉정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흥행과 수상

더 페이버릿은 201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았습니다. 올리비아 콜먼은 이 작품으로 제9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골든글로브, BAFTA,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등 주요 시상식에서도 수많은 상을 휩쓸며 그 해 가장 강력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흥행 면에서도 예술영화로서는 꽤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무엇보다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작품이었습니다.

결말에 대하여

결말은 섬뜩하고 동시에 허무합니다. 애비게일은 결국 여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가 원하던 행복은 도달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여왕은 애비게일의 진심을 꿰뚫어보고 있고, 애비게일 역시 여왕의 감정적 불안정성과 변덕을 직접 체험하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영화는 애비게일이 여왕의 발을 마사지하며 환심을 사던 초반과는 다르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치 가혹한 형벌처럼 그 발을 주무르고 있는 애비게일의 표정과 함께 끝납니다. 권력을 쟁취했지만 진정한 자유는 얻지 못한 인물의 초상이 인상 깊게 남습니다.

영화의 핵심 내용과 상징

더 페이버릿은 권력과 사랑, 질투와 통제, 신분 상승과 자기기만이라는 여러 주제를 절묘하게 엮어냅니다. 세 명의 여성 인물들은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나 이성 간의 관계로 묘사되지 않고, 각자의 정치적 욕망과 생존 전략을 가진 주체로서 그려집니다. 앤 여왕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인물이고, 사라는 그 권력을 자신과 나라를 위해 활용하려는 실용주의자입니다. 반면 애비게일은 감정이 아닌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며, 위선과 교활함으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영화에서 토끼는 여왕이 잃은 17명의 자식을 상징합니다. 이는 여왕이 얼마나 상처받고 외로운 인물인지, 그리고 그녀가 왜 감정적으로 취약한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연출과 미장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어안렌즈와 광각 촬영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기묘하고 불편한 시선을 만들어냈으며, 고풍스러운 궁정의 공간을 불안정하고 뒤틀리게 묘사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활용한 사운드와 정적인 구성은 18세기 시대극에 어울리면서도 현대적인 긴장감을 부여하며, 의상과 세트 디자인은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을 만큼 정교하고 세련됐습니다. 이는 영국 시대극이라는 익숙한 장르에 란티모스 특유의 불쾌하고 낯선 분위기를 더해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인상 깊은 장면

애비게일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성을 독살하는 장면, 사라와 애비게일의 대면 장면, 그리고 마지막 여왕의 발 마사지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왕과 애비게일, 그리고 토끼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며 관객에게 강한 불쾌함과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안깁니다.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지만, 실은 애비게일이 한 치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 여왕도 사랑의 공허 속에서 외롭게 남았다는 점이 시각적으로도 강렬하게 표현됩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느낀 점

이 영화는 처음 볼 때 꽤 낯설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일반적인 헐리우드 시대극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낯설음이 주는 묘한 매력에 끌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여성 중심의 권력 관계를 이렇게 깊고 치밀하게 묘사한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보면서 세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다니라는 감탄을 여러 번 했고, 그 감정의 밀도와 역동성은 남성 중심의 권력 드라마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치적 이야기면서도 인간적인 심리극이고, 시대극이지만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애비게일은 어떤 의미에선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권력의 자리란 것이 그렇게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영화는 매우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주는 여운과 메시지

더 페이버릿은 승자가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인간성이 파괴되고, 사랑이 거래의 대상이 되고, 감정은 조작의 수단이 되면, 결국 모두가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보다는, 모든 인물의 선택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진짜 권력은 무엇인가, 사랑은 언제 거래로 전락하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인간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마무리하며

더 페이버릿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궁정 드라마를 넘어, 인간 관계와 권력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세 명의 여성 주인공은 누구 하나 평면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그들의 갈등과 감정선은 치열하면서도 슬픕니다. 이 영화는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권력과 사랑, 감정과 계산이 얼마나 교묘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며, 현대 사회의 인간 관계에도 여러 가지를 시사해줍니다. 불편하지만 아름답고, 잔인하지만 유쾌한 영화. 더 페이버릿은 그 모든 이중성을 품고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