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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리뷰

by begin1004 2025. 6. 26.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제목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든 것들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제목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그 과한 제목이야말로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단순한 멀티버스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족, 후회, 정체성, 선택, 삶의 무게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인생 영화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대혼란 속으로 밀어 넣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줄거리 요약

이블린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입니다. 남편은 순하고 소심한 성격이며, 딸은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세금 문제로 국세청에 끌려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평소처럼 답답하고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국세청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남편의 또 다른 인격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그녀는 수많은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을 넘나들며 멀티버스를 파괴하려는 강력한 존재 조부 투파키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조부 투파키는 놀랍게도 그녀의 딸 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의 대결이 아닌, 세대 간 단절과 이해, 그리고 존재론적인 공허함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등장인물 소개

  • 이블린 (양자경)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엄마이자 멀티버스의 핵심 존재.
  • 웨이먼드 (키 호이 콴) 소심하고 다정한 남편. 멀티버스 세계에선 강력한 전사로도 존재.
  • 조이 / 조부 투파키 (스테파니 수) 이블린의 딸이자 멀티버스를 위협하는 존재.
  • 디어드라 (제이미 리 커티스) 국세청 직원이자 여러 세계에서 다르게 존재하는 캐릭터.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마블이나 DC에서 보던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내면은 철저히 '인간적'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핵심 주제는 '후회'와 '화해'입니다. 이블린은 다른 세계의 자신들을 보며, 지금껏 살아온 선택들을 후회하고, 동시에 자신이 잃은 것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가족에게로, 특히 딸 조이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조부 투파키가 상징하는 것은 무의미함입니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어떤 선택도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허무. 반면, 웨이먼드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선은 영화의 정서적인 중심을 이룹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우주 속에서도, 사소한 선의와 연대, 이해가 세상을 지탱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결말의 의미

영화의 결말은 격투나 파괴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해와 이해, 그리고 포용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블린은 결국 조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조부 투파키라는 어둠 속에 갇힌 딸을 향해, 나는 널 이해하진 못하지만, 널 사랑해라는 말로 다가갑니다. 이는 세대 간의 단절을 극복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해법이 됩니다. 무한한 세계를 넘나드는 여정 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였다는 메시지는 이 영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느낀 점

솔직히 처음 30분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내용인가, 웃긴 건가 진지한 건가 헷갈릴 정도로 장르가 섞여 있고, 편집도 빠릅니다. 그런데 그 속에 감정선이 깔려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점점 과장될수록, 감정은 더 진지해졌습니다. 조이와 이블린, 웨이먼드 사이의 갈등은 우리 모두가 가족 안에서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감정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웨이먼드의 대사 중 In another life, I would have really liked just doing laundry and taxes with you.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엄청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결국 중요한 건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말은 아주 깊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영화의 형식적 실험

이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 전달을 넘어, 형식적으로도 실험이 대단합니다. 빠른 컷 편집, 다양한 장르의 혼합 (SF, 코미디, 가족 드라마, 무협), 스톱모션과 애니메이션적 장면들, 심지어 락사우세지 손가락 우주까지. 관객을 실소하게 하면서도, 묘하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유행을 쫓는 멀티버스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입니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는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했거나, 후회가 있거나, 가족과 갈등이 있거나,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가 지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속 대사들이 가슴에 박힐 것입니다. 단순히 신박한 설정이 아닌, 인생과 존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정신없는 전반부를 조금만 견뎌보시길 권합니다. 그 너머엔 아마도, 지금껏 영화에서 보지 못한 방식의 따뜻한 이해와 위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