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미드90스 (Mid90s, 2018) 리뷰 – 사춘기와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성장

by begin1004 2025. 6. 27.

《미드90스 (Mid90s)》는 그 어떤 거창한 이야기나 극적인 사건 없이, 한 소년의 여름을 조용하게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고민과 욕망, 그리고 어설픈 어른 흉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조나 힐(Jonah Hill)의 감독 데뷔작으로, 배우로서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들던 그가 감독으로서 얼마나 섬세하고 진심 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미드90스》는 단순히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10대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장과 우정, 가정 폭력, 자아 정체성,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켠이 아릿했던 건, 이 영화가 꾸미지 않고 진짜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만 멀어진 기억들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13살 소년 스티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LA의 평범한 중산층 동네. 스티비는 폭력적인 형 이안과 단둘이 살고 있고, 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홀로 가족을 꾸려가려 애씁니다. 스티비는 형의 물건을 몰래 만지고 흉내를 내며 관심과 자립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입니다.

어느 날 동네 스케이트숍에서 스케이터 형들을 만난 스티비는 그들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다가갑니다.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배우며 그들과 어울리게 된 스티비는 점점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그는 일탈, 우정, 자아실현, 폭력, 성에 대한 탐색까지 다양한 감정을 겪게 되며 조금씩 변해갑니다.

영화는 크게 사건 중심이 아닌 일상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어, 스티비의 감정선과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의 성장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솔직하고,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 소개

  • 스티비 (서니 설직) 주인공 소년.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배워나가는 중.
  • 이안 (루커스 헤지스) 스티비의 형. 폭력적이지만 내면에 외로움이 있는 인물.
  • 레이 (나켈 스미스) 스케이트 그룹의 리더격 인물. 성숙하고 진지한 태도를 가진 청년.
  • 퍼셉션 (올런 프렌시스) 유쾌하고 말이 많은 친구. 자기 중심적인 면도 있지만 웃음을 줌.
  • 루벤 (지오 갤리시아) 처음엔 스티비에게 우호적이었지만 질투심이 많은 소년.
  • 마약 (라이더 맥러프린) 조용한 캐릭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모두를 기록함.

감독 조나 힐의 진심이 느껴지는 연출

조나 힐은 《미드90스》를 통해 "진짜 90년대"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그는 CG나 과장된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 90년대 영상 포맷인 4:3 화면비와 필름 질감을 고수했습니다. 배경 음악도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실제로 들을 법한 곡들로 채웠고, 배우들 대부분은 연기 경험이 없는 실제 스케이터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접근은 영화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특히 스티비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연출은 관객이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깊게 연결될 수 있게 해줍니다.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의 들뜸, 친구들과 웃고 싸울 때의 불안정한 감정, 형과 충돌할 때의 공포감 등은 배우의 감정보다 카메라의 위치와 분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영화의 핵심 주제 소속감, 남성성, 그리고 성장통

《미드90스》는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서, 청소년기 남성들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이야기합니다. 스티비가 스케이트 그룹에 끼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순한 흥미가 아닌, 가정에서 느끼지 못한 인정을 갈망하는 심리입니다. 형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를 우러러보는 이유,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헌신하는 이유는 모두 스티비가 사랑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룹 내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남성들이 등장합니다. 리더인 레이는 자기 꿈을 위해 스케이트에 집중하며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루벤은 질투심에 휘둘리고, 퍼셉션은 허세 가득한 농담으로 자존감을 유지하려 합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캐릭터들은 남성성이란 것이 정형화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스티비가 처음으로 성적인 경험을 하는 장면도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그 시기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과 막상 어른의 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그는 자꾸만 넘어지고, 다치며, 때로는 절망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경험이 그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듭니다.

결말과 여운

영화는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티비가 병원에서 눈을 뜨고, 친구들과 함께 영상을 보며 웃는 장면에서 조용히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성장의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 아픔과 환대, 실패와 용서가 얽힌 시간을 지나, 스티비는 진짜로 무언가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여전히 인생은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느낀 점 어설픈 시절의 소중함

《미드90스》를 보고 난 후 한동안 마음이 조용해졌습니다. 스티비의 여정을 따라가며 제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오르더군요.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안간힘을 썼던 기억, 아무 말도 없이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었던 순간들, 그리고 그 시절에만 가능한 특별한 감정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미드90스를 지나온 게 아닐까요.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화려한 스토리나 감각적인 연출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누군가에겐 전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어설프고 혼란스럽기만 했던 시절도,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미드90스》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어른이 되기 전의 그 어설픈 시기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지금 그 시절이 멀어졌다고 느낀다면, 한 번쯤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돌아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