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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The Favourite, 2018) – 권력, 질투, 생존이 교차하는 궁정 드라마의 새로운 해석

by begin1004 2025. 6. 2.

1. 단순 시대극을 넘어선 권력과 욕망의 드라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8년작 〈더 페이버릿〉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궁중 멜로가 아니다. 이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와 왕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투쟁, 사랑과 질투라는 보편적인 감정의 격돌을 세 여성의 시선을 통해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여왕 앤과 그녀의 절친한 친구 사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하녀 애비게일 사이의 권력 관계는 단순한 삼각관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쟁이며, 감정이라는 무기를 들고 벌이는 심리적 생존 게임에 가깝다.

2. 여성 캐릭터 중심의 복잡한 권력 관계

우선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앤 여왕은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있으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라는 사실상 국정을 조율하는 실세로, 냉철하면서도 강인한 성격을 지녔다. 그리고 사라의 사촌인 애비게일은 처음에는 겸손하고 착한 하녀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묘한 계산과 기회를 노리는 생존 본능을 드러낸다. 이 세 여성의 관계는 고정되지 않으며, 감정과 권력의 추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한다.

3.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한 연출 방식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기존의 왕실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를 보여준다. 고전적인 궁중 영화가 웅장함과 우아함을 강조했다면, 이 영화는 권력의 민낯과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이는 카메라 워크나 조명, 음악에서도 드러나는데, 특히 광각 렌즈와 어두운 실내 조명은 캐릭터들의 왜곡된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 불편함은 곧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으며,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날카롭게 작동하는지를 말이다.

4. 사라와 애비게일, 대비되는 두 인물

영화의 초반부는 사라와 애비게일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사라는 오랜 시간 동안 앤 여왕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정치적 보좌자 역할을 해왔다. 그녀는 왕실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귀족들과도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반면 애비게일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로, 생존을 위해 궁으로 들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사라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처럼 행동하지만, 이내 여왕의 관심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인다.

5. 애비게일의 감정적 권력 접근 전략

애비게일의 전략은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감정적 연결을 통해 권력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여왕의 고통과 외로움을 이해하는 척하며,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여성 간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이나 경쟁 이상의 복잡성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애비게일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며, 그녀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양면성은 이 영화가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도로 읽히지 않도록 만든다.

6. 심화되는 사라와 애비게일의 갈등

영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사라와 애비게일 사이의 갈등은 격화된다. 그리고 그 갈등은 단순히 앤의 총애를 얻는 것을 넘어, 궁정 내에서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사라가 여왕에게 애비게일의 야심을 경고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여왕은 이미 애비게일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사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권력 관계가 감정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정과 질투, 신뢰와 배신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서로 얽히며, 결국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게임으로 이어진다.

7. 불안정한 권력의 중심, 앤 여왕

앤 여왕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 신체적 고통, 과거에 잃은 아이들에 대한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그 불안정함은 주변 인물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빼앗기거나 얻으려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여왕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력 다툼의 중심에 있는 '대상'일 뿐이며, 진정한 권력은 그녀의 마음을 누가 더 잘 조종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는 권력이 항상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닌, 감정과 정신의 지배라는 것을 상징한다.

8. 권력과 행복, 그리고 공허함의 결말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애비게일은 여왕의 총애를 얻고 지위 상승을 이루지만, 그녀가 느끼는 공허감과 고립은 이전보다 더 커진다. 여왕은 점점 더 무력한 존재가 되고, 사라는 쫓겨났지만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한다. 이 결말은 권력을 얻는 것이 곧 행복이나 구원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구도 완벽히 승리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잃어가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한다.

9. 역사 속 인간 심리의 현대적 해석

〈더 페이버릿〉은 역사적 배경을 빌렸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심리는 매우 현대적이다. 감정과 욕망, 생존과 권력의 문제는 시대를 초월하며, 이 영화는 그것을 세심하게 드러낸다. 세 여성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삶의 불편한 진실들을 보여주며, 권력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